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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영화

12:13

카와이 유미 <내 인생을 바꾼 영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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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옆에 아미코가 있다. 항상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빨래를 미루고 있는 나를 불타는 눈빛으로 찌르듯이 쳐다본다.

새빨간 B2에 커다랗게 그려진 교복 입은 소녀의 모습은 혼자 사는 방에는 너무도 상징적이어서 주방에 걸어두었다. 이것은 본가를 떠날 때 가져온 것이다. 새 출발을 위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면 이 애착이 너무 강한 포스터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아직은 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생을 바꿨다"는 말을 듣고 떠오른 영화는 야마나카 요코 감독의 <아미코>(2018)라는 영화 1편뿐이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것뿐이었다. 지금의 자신,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인생.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그날 <아미코>를 보러 갔다가 나는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상당히 축제를 좋아하는 성향의 학교였다. 남들 앞에서 춤출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쨌든 누군가가 무언가를 선보이는 자리가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정신이 뿌리내린 교풍이었다. 그런 곳에서 3년 동안 마치 무아지경으로 춤과 노래에 몰두했다. 새벽까지 안무를 구상하고, 때로는 만원 전철에서 서있는 채로 맥북을 열어 음원을 편집하며 통학하는 등, 무대에 서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큰 기쁨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본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감동을 받는 것, 그것은 마술 같으면서도 확실하고 육체적인 체험이었고,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거야"라고 머릿속으로 분명히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즐거운 일을 평생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다만, 늘 건실한 길을 택해온 세 자매 중 장녀인 그녀가 갑자기 모든 선택지를 버리고 비현실적인 꿈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아도 진지하게 받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때마다 제대로 겁을 먹었다. 그래서 이대로 대학에 진학해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하면서 그 후에 오디션을 보기로 하고, 누구의 강요도 아닌데 인생에 보험을 들기로 했다. 위험을 무릅쓰지 못하는 내 어리석음에 입술을 깨물며 책상에 앉았다.

2018년, 연호(역주:일본의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2019년 5월부터 레이와로 변경)가 바뀌기 전 마지막 해. 3학년이 되어 소속된 댄스부에서도 은퇴하고, 본격적인 문화제 준비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수험으로 바쁜 시기이지만, 3학년은 체육관에서 학급 연극을 공연하는 축제 고등학교다운 전통이 있었고, 우리 C조는 브로드웨이의 롱런(장기흥행) 작품 <코러스 라인>을 바탕으로 <헤이세이의 마지막 여름이었다>라는 제목의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 오디션에서 배우들이 각자의 배경을 독백하는 원작의 스토리를 차용하여, 반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 3학년 C반의 문화제까지 가는 과정 자체를 연기하는, 꽤 재미있는 소재였다. 연극과 진로를 번갈아 생각하며 꿈과 현실을 오가는 쉴 틈 없는 여름방학이었다.

때마침 브로드웨이의 <코러스 라인>이 일본 투어로 시부야의 극장을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이, 그것도 저쪽의 출연진이, 운명적인 타이밍에 예매권으로 찾아온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티켓을 구입해서 오늘만이라도 연극 연습을 빠진 채 이노카시라선을 타고 도큐 시어터 오브로 향했다. 그곳에서 2시간 동안 나는 꿈의 세계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무대에서 쏟아질 듯이 형형색색의 몸들이 뛰놀고 있었다. 머나먼 뉴욕을 떠올리며 유튜브에서 보았던 그 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이걸 사랑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본다. 그리운 넘버들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노래하고 싶다. 부를 수 있다. 사운드트랙을 수백 번 듣고 전부 외운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We did what we had to do
私たちはやらなくちゃならないことをやった

Wonʼt forget, canʼt regret
忘れない、悔いることなどできない

What I did for love
愛のためにやったことを

나는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그것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엄청난 기세로 내 두뇌를 회전시키고 가슴을 부풀게 했다. 사랑하는 일에 인생을 걸고 싶다. 그날 집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이미 굳혀있었다. 진로 변경에는 늦은 고등학교 3학년의 8월 말, 나는 수험공부를 과감히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쨌든 형태를 만들어간다. 이제부터 연기를 배우고 소속사에 들어간다. 나는 주변이 놀랄 정도로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기를 배울 수 있는 대학으로 지망을 바꾸고 새로운 학원에 들어갔다.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친구에게 부탁해 공원에서 이력서용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배우로 일하던 유일한 지인에게 연락해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배우 소속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상담한 사람은 오시타 히로토라는 배우였는데, 그가 출연하는 영화가 포레포레 히가시나카노에서 상영 중이었고, 그게 바로 <아미코>였다.

영화는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그 당시 내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종류의 열정이 있었다.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세상을 의심하며 조용히 분노한 채 나아가는 아미코와 최소한의 동료를 모아 10대에 이 영화를 찍었다는 감독의 에너지가 스크린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상영 후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히로토 씨와 주인공 아미코를 연기한 스노하라 아이라 씨, 야마나카 요코 감독이 있었다. 모두 젊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으로 포스터를 구입하고 극장을 나와서 중앙선 선로 앞에서 야마나카 감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감독과 대화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무척 떨렸다. 히로토 씨가 손짓을 하며 소개를 해주었다. 히로토 씨는 지금도 소중한 은인이자 선배이자 동료인 사람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아미코의 사진에 히로토 씨의 계정을 태그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다음 날 모르는 계정에서 DM이 왔다. "영화를 만들고 있는 24세입니다. 어제 극장에서 뵙고 우연히 인스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준비 중인 영화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워서 죄송하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yumi 씨에게 출연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몸이 굳었다.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가 없다. 나를 계정 이름 그대로 부르며 영화에 나와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왜 포레포레 히가시나카노에서 본 나를 인터넷 속에서 찾아낸 것일까. 태그를 따라서? 메시지는 여성 스태프도 데리고 갈 테니 한 번만 얘기를 좀 들어줄 수 있겠냐고 하며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SNS를 멀리하고 있는 나이지만, 2000년생으로 Z세대인 나는 훌륭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은 만나면 안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어왔다. 꿋꿋한 큰딸은 마침내 꿈에 모든 것을 걸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신변안전은 지키려 했다. 이런 인터넷 스토커 같은 영화학도를 현실에서 만나면 안 된다, 무섭다. 하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찾아간 극장에서 처음으로 개봉하는 영화와의 만남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기나 범죄도 아니고 내 망상도 아니고 진짜라면 기적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붙잡고 싶다. 그래서 확인해야 한다. 시바야마 켄타라는 사람과 한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건 바로 <헤이세이의 마지막 여름이었다>를 보러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매년 꽤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우리 고등학교의 문화제에서 얼굴을 마주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이상한 사람 같으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그에게 연락을 취해 문화제 당일에 학교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공연이 끝난 후 체육관 앞에서 고등학생도 아니고 부모 세대도 아닌 나이의 시바야마 씨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으로 약속대로 스태프인 나카가와 씨라는 여성과 함께 와주었다. 서로 긴장한 채 인사를 주고받으며 시바야마 씨는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무척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음에 카페에서 영화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해서 나는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연이 있었던 헤이세이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한바탕 드라마틱 하게 쓰고 난 뒤지만, 반드시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고등학생이 자신의 얼굴 사진을 올린 공개 계정으로 DM을 통해 대화를 나눈 낯선 어른을 만났다는 것이다. 내 선택은 충분히 위험한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 배우를 꿈꾸는 아주 어린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자신은 아직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익숙한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인맥을 넓히려고 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들 역시 조심하기를 바란다. 이 에피소드를 미담처럼 공개하는 것 자체에도 가해성이 있을 수 있다. 괜찮은 사람 같음/이상한 사람 같음의 감은 언제든 쉽게 빗나갈 수 있다. 연예계에 들어와 보니 괜찮은 사람 같으면서도 이상한 사람들뿐이었다. 젊은이들의 빛나는 소망을 이용하려고 다가오는 악이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세상을 의심하고 필요한 자기방어를 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당신과 만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이곳을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당신과 서로 힘을 합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때의 나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직시하고 싶지 않다. 여러 가지로 부끄럽고 어리석었다. <아미코>는 솔직히 그런 나의 새파란 기억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찌나 가슴이 먹먹한지. 야마나카 씨나 시바야마 씨, 히로토 씨, 아이라 씨에게 실례가 될 정도로제 멋대로, 예전의 내 모습과 아미코를 연관 지어버렸다. 아미코를 보러 간 그날의 일은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으로서 기억해 두어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것의 형태 없음은 기억과 체험의 틈새에 얽히고 설키고 스며들어 인간의 피와 살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미코는 그날 이후로도 변함없이 어른들을 믿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순수함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 순수한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역시 지금 시점에서 나에게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은 냉장고 곁에 두고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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